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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곳 분타로 돌아온 저는 제게 벌어진 일을 소상히 적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왜 중간에 끊느냐 책망하셨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사실 저 역시도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 저를 억지로 끌어낸 탓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의 의사를 거스를 수가 없었습니다…….> 장전비는 종이의 여백을 바삐 채워 가고 있었다.
불타오르는 비맹로.
비명을 지르는 적가보 무인들.
그리고 만주일.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을 적어 놓는 것에 불과한데, 긴장되어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뛴다.
장전비는 잠시 붓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진정을 하고자 깊이 숨을 들이켰다.
“흐읍.” 심호흡을 거듭해 보지만,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더욱이 그다음에 벌어졌던 만주일과의 피 튀기는 싸움이 떠오르자, 등골이 오싹하기까지 했다.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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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일. 로투스홀짝
그는 만인이 인정하는 일류 고수이다. 그런 사람과 대등하게 싸워 이겼다.
그리고 만주일의 몸을 갈랐던 건 칼날이 아니라 투명한 기운이었다.
그것이 정말 만주일의 말처럼 도기(刀氣)였던 걸까?
이기상인의 경지.
그것에 다다른 무인들을 일류라 부른다지 않던가.
장전비는 낮게 오픈홀덤 중얼거렸다.
“그럼 나는 일류 고수인 건가?” 모르겠다.
장전비는 이제야 좀 진정이 되었다 싶은지, 내려놓았던 붓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종이에 세이프게임 적어 가던 글자를 이어 가려 했다.
그때였다.
“전비야!” 창밖 멀리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전비는 붓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서옹이 뛰어오고 세이프파워볼 있었다.
“전비야! 큰일 났다! 큰일 났어!” 장전비는 눈살을 찌푸렸다.
서옹과 상조림은 지난 사흘 동안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을 수습하기에 바빴다.
그날 밤 일어났던 일을 비검문의 급습으로 인한 공멸로 꾸미고, 그사이에 거미 패가 개입한 흔적을 지우려 노력했다.
일이 틀어지기라도 한 걸까?

장전비는 파워볼사이트 고민하며, 서옹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옹이 집무실 문을 박차며 헐레벌떡 들어섰다.
“저, 전비야. 헉, 헉. 전비야! 헉, 헉.” 장전비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침착한 어조로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큰일이 났다! 헉, 헉. 크, 큰일이 났어!” “관과의 협상이 틀어졌습니까?” 관부는 무림 문파 사이의 항쟁에 꺼리는 편이지만, 이번만은 사정이 달랐다. 지역의 토호 세력에 가깝던 무파 둘이 동시에 사라진 것이니, 관부라고 모른 척할 수 없을 터였다.
하기에 서옹은 금품으로 고위 관리를 매수하려 했는데, 그게 틀어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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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그건 잘되었지!” “그럼 봉미장이나 철중표국이 들이닥친 겁니까?” 봉미장은 하북 남부 지역의 패자를 자처하는 문파. 그리고 철중표국은 가장 인접한 무림 세력이다.
적가보와 비검문이 사라지고 없으니, 그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올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너무 빠르다 싶다.
“아니야! 봉미장이나 철중표국은 아직까지 모르고 있을걸?” 장전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대체 뭐가 큰일이라는 겁니까?” “왔다! 왔어! 그들이 와서 너를 찾아!” “대체 누가 저를 찾는단 겁니까?” “백기련이 왔단 말이다!” “네?” * * * 만리향이라는 이름의 다루 이 층.
둥근 탁자를 가운데 두고, 서옹과 상조림, 장전비, 독안주가 앉아 있었다.
모두의 안색은 침중하기 그지없었다.
백기련이 왔다는 건 심각한 일이었다.

비검문과 적가보는 모두 백기련에 가입되어 있었다. 장강 이남의 모든 무문이 백기련에 가입되어 있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건 백기련은 자신의 연합에 가입된 세력이 공멸했다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었다.
두 문파의 궤멸을 낱낱이 파헤치고, 조사 여부에 따라 그 책임을 물을 것이 분명했다.
언젠가 닥칠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너무도 빨랐다.
거미 패가 몸을 숨길 시간이 없었다. 이제야 시도하기에는 때늦다.
장전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일이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지역 관부조차도 이제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하고 고개를 들이미는 실정인데, 백기련이 어찌 알고 사람을 파견한 것일까.
각자 고민을 하느라, 좌중은 침묵만이 가득했다.
어느 순간, 독안주가 뭔가를 알겠다는 듯 살짝 입을 벌리고 탄성을 뱉었다.
“아! 이걸 의미한 거였나?” 장전비의 눈동자가 휙 돌아가 독안주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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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짐작되는 게 있어?” “적만웅의 유언.” “그가 뭐라 했는데?” “‘백기련으로 간 내 아들이 돌아오는 날, 너희는 오늘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였나? 뭐, 그런 비슷한 말을 하던 거 같더군.” “적기린? 소묘가 백기련으로 가?” 독안주는 알 수 없다는 양어깨를 으쓱하였다.
“고양이 따위 알게 뭐야.” 적기린의 별호는 하간소호였으나, 거웅 패들 사이에서는 소묘라 불렀었다.
장전비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날의 싸움 중에 적기린을 볼 수가 없었다. 불에 타 죽었기에 알아볼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한데 소묘가 그 일이 있기 전에 백기련으로 갔다라? 그리고 백기련의 무인들이 하간에 와 장전비 일행을 보고자 한다?
어느 정도 아귀가 맞는다.

장전비는 빠르게 물었다.
“분타주님, 몇이나 왔습니까?” 서옹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구나. 서른은 넘는다.” “그리 많지는 않군요. 해볼 만하겠습니다.” 상조림이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물었다.
“무슨 뜻이냐?” 장전비는 차갑게 속삭였다.
“치죠.” 상조림은 피식 웃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백기련이 우습게 보이느냐?” 장전비 대신 독안주가 대답했다.
“칼을 먹이면 죽기는 매한가지 아닙니까. 우린 적가보를 없앴습니다. 백기련이라고 해서 별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상조림과 서옹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장전비와 독안주를 향해 말했다.
“셋이다.” “나는 둘이 고작이야.” 장전비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뭐가 말씀입니까?” 상조림은 제 가슴을 두들겼다.


“내 목숨을 걸고, 그러니까 동귀어진을 감행한다 하여도 지금 온 백기련 무인 중 셋 이상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서옹이 확인을 해 준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나는 둘. 그게 한계일 게다.” 장전비는 놀라 두 눈이 동그래졌다.
장전비가 아는 상조림은 고수였다.
이 년 전, 사문의 비보였던 잔결십팔도를 얻은 후 놀라운 발전을 거듭해 왔다.
장전비가 생각하기에 죽은 적가보주 적만웅이나 비검문주 화무양에 비해서도 모자라지 않았다. 아니, 더 강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장전비는 마음속으로 상조림과 자신을 비교해 보았다. 그저 무를 견주는 비무 수준이라면 장전비로서는 상조림의 공격을 이십 합 이상 받아 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생사를 건 싸움에서는 다르다. 생사투의 결과를 익힌 무공의 수위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성정의 강단, 지형지물의 이용, 기회를 잡는 재능까지.

그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
하면, 상조림을 상대로 목숨을 건 싸움에 임한다고 가정할 때에는?
오 할.
반반이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싸움이 되겠지.
상조림이 백기련 무인 중 셋 이상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건, 장전비 또한 셋 정도만이 상대가 가능하다는 뜻일 게다.
‘서른 이상이라…….’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리 목을 빼어 놓은 채, 베어 달라고 기다리고 있을 순 없는 것 아닌가.
그때, 장전비는 인기척을 느꼈다.
상조림과 서옹, 장전비는 거의 동시에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방문이 열리며 하얀 정복 차림의 무인 둘이 들어왔다.
장전비는 날카로운 눈으로 들어선 무인들을 살폈다.
단단해 보였다.
적가보나 비검문 수뇌급 정도? 아니 그 이상이다.

‘이런 자들이 서른이나 된다고?’ 두 무인 중 한 명이 방 안을 훑어보며 차갑게 말했다.
“너희 중 장전비가 누구인가?” 장전비는 살짝 몸을 젖혀 보였다.
“나요.” 그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지 백기련 무인들은 살짝 미간을 좁혔지만, 이내 가셔 내고는 몸을 돌렸다.
“따라오라.” 그러자 네 사람 모두가 일어섰다.
“아니. 장전비만.” 서옹, 상조림, 독안주의 눈이 장전비를 향했다. 모두의 눈동자 속에 걱정과 우려가 가득하다.
장전비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장전비는 백기련 무인의 뒤를 향해 걸었다.
백기련 무인들은 장전비의 발소리를 들었는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장전비를 삼 층으로 안내했다.
세 개의 내실을 지나, 네 번째 내실 앞.
문 앞에는 백기련 무인 둘이 더 서 있었다.
장전비를 안내한 두 명의 무인은 그들의 옆으로 서고는 장전비에게 고갯짓을 했다.
문 안으로 들어가라는 의미.

장전비는 잠시 무인을 바라보다, 성큼 몇 걸음을 걸어 문을 열어젖히다.
열린 문 안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장전비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 끝 쪽에 찻잔을 들고 서 있는 한 사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장전비는 긴장되어 딱딱해지려는 입매를 움직였다.
“찾으셨다 하여 왔소.” 사내는 그제야 알아챘다는 듯 천천히 몸을 돌렸다.
점점 장전비의 눈이 커져 갔다.
‘이자가 왜 이곳에?’ 중년의 사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구먼. 이 년 만인가? 그동안 잘 지냈나?” 장전비는 대꾸치 않고 침음성을 흘렸다.
이 년 만이었다.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장전비는 바로 어제처럼 기억이 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내의 이름은 금위진.
그녀의 호위 무사이니까.
천라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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